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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이야기 -

원주율에 진심인 사람들...소수점 100조 자리까지 계산

by KOREAN BANK CLERK 2023. 3. 12.

 

Lismore Comprehensive school

 

 

세계 수학의 날인 3월 14일이면 전 세계 사람들이 원주율을 기념합니다. 세계 어딘가에는 원주율에 푹 빠져 원주율을 수조 자리까지 계산하거나 7만 자리까지 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원주율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걸까요. 원주율을 100조 자리까지 계산해 세계 1위에 오른 이와오 엠마 하루카 구글 클라우드 개발자의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 100만 자리에서 100조 자리까지...이와오 엠마 하루카

 

이와오 엠마 하루카

12살 이와오 엠마 하루카 개발자는 순전히 호기심으로 원주율 계산에 발을 들였습니다.

“당시에 원주율을 계산하는 ‘슈퍼 파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어떤 건지 궁금해서 집에 있는 컴퓨터에 내려받았는데, 간단하게 100만 자리를 계산할 수 있었지요. 이 프로그램이 컴퓨터 성능 테스트에 사용된다는 것을 알고 굉장히 놀랐어요. 한편으론 ‘더 많은 자릿수를 계산할 수는 없을까’라고 생각했지요.”

이와오 개발자는 어렸을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익히며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좋아했어요. 하지만 중고생 때 수학 성적이 좋지 않아 문과 계열 대학에 진학했어요. 일본 츠쿠바대에서 교육학과 심리학을 공부했지요. 그러던 중 담임교수가 컴퓨터를 좋아하면 전공을 바꿔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컴퓨터공학 공부를 시작했어요.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제가 있던 곳은 고성능 컴퓨팅 시스템 연구실이었어요. 슈퍼컴퓨터나 여러 대의 컴퓨터를 연결해 하나의 시스템처럼 계산하는 고성능 컴퓨터에 흥미가 있어서 이 연구실을 선택했지요. 그런데 이 연구실에 타카하시 다이스케 교수님이 계셨어요. 교수님은 2009년 원주율을 약 2조 5000억 자리까지 구한 세계 기록 보유자였어요. 교수님과는 주로 연구 이야기를 하고 원주율에 관해 이야기한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성능 컴퓨터와 같이 속도가 빠른 컴퓨터를 연구하면 머지않아 원주율 계산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2010년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여러 IT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던 이와오 개발자는 구글에 재직 중인 대학 친구들이 굉장히 즐겁게 일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결정적으로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구글 개발자의 날’ 행사에서 구글 개발자의 이야기를 듣고 감명받아 꼭 구글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하지요. 결국 2015년에 4번의 고배 끝에 구글에 입성했습니다. 처음에는 구글 도쿄 지사에서 일하다가 2019년 미국 시애틀 지사로 오면서 마음에 품고 있던 원주율 계산을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찾아온 기회와 그간 쌓은 지식을 결합해 목표를 이룰 수 있었어요!"

이와오 엠마 하루카의 발자취

Q. 원주율을 계산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제가 하고 싶어서요. 개발자가 아닌 사람에게 구글 클라우드가 가진 기술의 쓰임이나 유용성을 잘 알리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어요. 이 시스템이 원주율 계산을 얼마 동안 몇 자리까지 했다고 설명하면 컴퓨터의 속도나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 크기 등을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2019년 3월 14일, π-데이에 맞춰 원주율을 계산하려는 계획을 세웠지요. 구글 클라우드의 컴퓨터 사양이면 세계 기록을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아 상사에게 제안해서 진행했어요."

Q. 2019년 세계 기록을 세웠다가 바로 다음 해 다른 팀에게 빼앗겼던 세계 1위 자리를 2022년에 되찾았어요.

"세계 기록을 세우는 건 큰 운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연구자가 이미 저보다 많은 자리를 계산 중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계산하는 내내 굉장히 조마조마하고 걱정됐어요. 다른 사람이 기록을 깼을 땐 바로 또다시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두 번째 도전에서 원주율의 소수점 아래 100조 자리까지 계산을 마쳤을 때 우선 안심이 됐어요. 기획부터 반년 이상 일을 진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긴 시간 동안 해왔던 일을 제대로 마쳤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뒤 다른 알고리즘으로 계산한 결과를 검산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그때가 가장 무섭고 긴장됐어요. 계산 과정에 실수가 있으면 결과가 바뀌니까요. 마침내 신기록을 달성한 걸 확인하고 뿌듯했답니다."

Q. 컴퓨터 계산에 수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나요.

"아무리 빠른 컴퓨터가 있어도 원주율을 계산하는 수학 공식이 없으면 100조 자리까지 계산할 수 없을 거예요. 또 원주율을 더 잘 구할 수 있는 새로운 공식을 찾으면 원주율을 계산하는 효율이 높아져요. 계산 방식에 따라 계산량, 컴퓨터가 해야 하는 일이 몇 배씩 달라지기 때문이에요.

또 곱셈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하는가가 중요해요. 예를 들어 10자리와 10자리를 곱하면 모든 자리를 각각 서로 곱해야 하니까 100번을 곱해야 해요. 따라서 1조 자리는 그보다 많은 횟수를 곱해야 하지요. 이러한 곱셈을 빨리 계산할 수 있도록 하는 곱셈 알고리즘이 필요해요."

이와오 개발자의 첫 번째 기록과 두 번째 기록 비교. GIB

 

Q. 원주율을 계산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요.

"아주 좋은 질문이네요. 원주율의 소수점 아래 수백 조 자리까지 필요한 경우는 별로 없어요. 정밀한 계산에서도 약 40~50자리 정도가 충분하다고 알려졌지요. 원주율 계산은 어디까지나 과정과 도전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컴퓨터에 정말 조금의 오류라도 생기면 끝까지 계산할 수 없어요. 그래서 끝까지 계산했다는 것은 그 컴퓨터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가 되지요.

또 원주율 계산은 컴퓨터에만 국한되지 않아요. 처음에는 손으로, 그다음에는 수동 계산기로, 또 컴퓨터로 인류는 수천 년 동안 계속해서 원주율을 계산해 왔어요. 원주율 계산이 발전해 온 과정을 통해 인류 문명의 진화를 비춰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Q. 원주율은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원주율에 관해 여러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아요. 공통의 도전 커뮤니티가 생겼지요. 다른 하나는 원주율 계산 신기록을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은 거예요. 저를 보고 ‘해외에서 일본인 여성 개발자가 성공할 수 있구나’ 하고 용기를 얻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이렇게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Q. <수학동아> 독자들한테 한마디 해주세요.

"제가 원주율 계산 세계 신기록이란 꿈을 처음 실현했을 때 35살이었어요. 그때까지 세계 기록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상상할 수 없었어요. 그렇지만 우연한 기회와 제가 가지고 있던 컴퓨터 지식을 결합해 이런 성과를 얻을 수 있었지요. 이처럼 어디서 무엇이 도움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여러분도 흥미가 생기는 모든 것에 도전해서 지식과 경험을 깊게 쌓기를 바랍니다. 눈앞에 기회가 있을 때 반드시 도움이 될 거예요."

○ 62조까지 원주율 계산한 기네스 세계 기록 보유팀


2021년 8월 스위스 그리슨응용과학대학교 연구팀은 원주율을 약 62조 자리(2π × 1013)까지 계산해 기네스 세계 기록을 달성했어요. 7개월 뒤 이와오 개발자가 기록을 깼지만, 아직 기네스 세계 기록 검토 과정에 있어서 스위스 연구팀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요. 원주율 계산의 역사를 돌이켜보며 토마스 켈러 스위스 그리슨응용과학대학교 연구원을 인터뷰했습니다.

Q. 연구팀과 본인 소개를 부탁드려요.

"데이터 분석과 시각화 및 모의실험을 연구하는 우리 팀은 과학자 6명으로 구성됐어요. 저는 지난 20년간 정보기술 분야에서 다양한 일을 수행해 왔습니다. 팀에서는 연구에 필요한 고성능 컴퓨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Q. 어떤 계기로 원주율 계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나요.

"중학생이었던 80년대 후반에 컴퓨터로 하는 원주율 계산을 처음 알게 됐어요. 당시 수학 선생님이 칠판에 한 신문 기사를 잘라서 붙이셨는데, 일본 연구팀이 원주율을 상당히 많이 계산했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기사에 마음을 빼앗겨서 직접 해보기도 했지요.

우리 팀은 새로운 컴퓨터 하드웨어를 테스트하기 위해서 원주율 계산을 시도했어요. 원주율 계산은 시스템의 성능을 테스트할 때 매우 좋은 기준이 되기 때문이에요."

연구팀이 원주율 계산 세계 기록 달성을 기념하는 모습. 토마스 켈러 연구원은 오른쪽에서부터 세 번째. Thomas Keller

 

Q. 원주율을 어떤 방식으로 계산했나요.

"우리는 두 가지 다른 알고리즘을 사용했어요. 먼저 추드노프스키 알고리즘으로 원주율을 계산했어요. 이 알고리즘은 1번 반복할 때마다 14자리 이상의 소수점을 생성하기 때문에 원주율을 계산하는 매우 효율적인 알고리즘이에요.

그다음 BBP 알고리즘을 사용해 62조 8000억 개의 숫자 중 마지막 32자리를 검증했습니다. BBP 알고리즘을 이용하면 임의의 소수점 아래 원주율 자릿수를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이전의 모든 숫자를 계산하지 않고 소수점 아래 30498번째 자릿수부터 그 뒤 10자리를 계산할 수 있지요."

Q. 원주율을 계산하는 데 얼마나 걸렸나요. 그리고 왜 약 62조 자리에서 멈췄나요.

"추드노프스키 알고리즘으로 계산하는 데 108일이 걸렸고, BBP 알고리즘으로 마지막 32개의 자릿수를 확인하는 데 14시간이 더 걸렸어요.

원주율 계산 프로그램인 와이-크런처는 계산할 자릿수를 미리 결정해야 해요. 우리 팀의 팀장인 헤이코 뢰케 연구원이 2π×1013에 해당하는 62,831,853,071,796자리까지 계산하자고 제안했어요. 컴퓨터는 필요한 자리까지 계산을 마치자마자 제때 멈춘 거지요."

Q. 구글이 원주율 세계 신기록을 깼는데 다시 신기록을 되찾아올 계획이 있나요.

"우리는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연구 프로젝트에 필요한 성능을 갖췄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원주율을 계산했어요. 이 사실을 이미 확인했기 때문에 현재는 원주율이 아닌 다른 연구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현재는 알레르기 연구를 위한 게놈 분석, 스위스 공용어 중 하나인 로망슈어를 위한 기계 번역과 같은 광범위한 연구 활동에 참여하고 있지요."

원주율 계산의 역사

 

○ 별별 원주율 기네스 세계 기록.

기네스 세계 기록에 원주율을 검색해 보면 별의별 기록이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이유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도전했는지 알아봤는데요. 그중에서도 원주율을 7만 자리까지 외워 기네스 세계 기록에 오른 인도의 라즈비르 미나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중동 지역 국가인 오만에 있는 술탄학교에서 사람으로 원주율을 가장 길게 표현한 세계 기록을 가지고 있어요. 2018년 π-데이를 기념하기 위해 모든 학생과 전 직원, 그리고 학부모까지 손에 원주율 자릿수가 하나씩 적힌 종이를 들고 순서대로 쭉 서 있었지요.

The sultan's school

2019년 영국 리즈모어중등학교의 수학부에서 π-데이에 가장 큰 π를 만드는 도전을 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얼마 뒤 참여하기로 한 학생 중 한 명이 당뇨병으로 죽음을 맞이했어요. 그래서 학교는 π-데이에 세계 기록에 도전하는 동시에 당뇨병 환우를 위한 자선기금도 모금하기로 했습니다. 행사 당일에는 학생과 교사뿐만 아니라 식당, 사무실 직원 등 학교 구성원 전체가 참여해 세상에서 가장 큰 π를 만들었어요.

Lismore Comprehensive school

 

Q. 어떤 계기로 원주율을 외우게 됐나요.

"현재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라즈비르 미나입니다. 저는 시골 마을의 학교에 다녔어요. 이후 공부를 위해 인도의 코타라는 도시에 갔을 때, 우연히 인도의 원주율 암기 신기록 보유자의 연수회에 참석하게 됐어요. 그때 제가 원주율을 외울 재능이 있고 기록을 깰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2009년 인도 벨로르공과대학교에 입학한 뒤 본격적으로 원주율을 외우기 시작했지요."

Q. 원주율 숫자들을 어떻게 외웠고 얼마나 걸렸나요.

"0부터 99까지 몇 개의 숫자 암기법을 만들고, 그 후 평생 가본 곳을 긴 사건으로 정리한 일련의 순서에 원주율 자릿수를 대입했어요. 이를 반복해서 100% 정확도를 얻을 때까지 암송했습니다. 원주율 소수점 아래 7만 자리를 외우기까지 약 6년 반이 걸렸고, 2015년에 기네스 세계 기록을 세웠지요."

Q. 9시간 27분 동안 원주율을 외웠다고 들었는데 원주율을 암송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제가 외운 것을 기네스 세계 기록으로 최종 평가받기 전까지 대학교에서 모의 평가를 6번이나 해봤고 친구들 앞에서도 여러 번 외워봤어요. 그때마다 정확도가 100%였지요.

그런데 최종 평가 날, 저는 설사로 고생하고 있는 데다가 행사 장소는 에어컨 때문에 너무 추워서 힘들었어요. 하지만 이미 수차례 연습했기 때문에 성공해냈습니다."

Q. 원주율 암기 세계 1위라는 기록이 당신의 삶을 변화시켰나요.

"세계 기록을 세운 이후에 매우 긍정적이고 자신감이 넘치는 성격으로 바뀌었어요. 그 덕분에 앞으로 몇 년 동안 더 많은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확신하게 됐지요."

Q. 아직도 원주율을 7만 자리까지 외울 수 있나요. 숫자를 더 외울 계획이 있나요.

"지금은 7만 자리를 다 외울 수는 없지만, 몇 주나 몇 달 정도 연습하면 다시 외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시간이 된다면 십만 자리까지 도전해보고 싶어요."

Q. 당신의 도전을 응원하겠습니다. 끝으로 <수학동아>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어떤 말을 하든, 자신의 재능에 따라 꿈을 좇길 바랍니다!"

○ 수학을 악보에 그리는 사람들 - 이지수 음악감독


2022년 개봉한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는 주인공이 원주율을 악보 삼아 만든 ‘파이송’을 연주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불규칙한 숫자가 하나씩 모여 아름다운 선율을 이루는 모습이 큰 감동을 주었지요. 파이송은 평창 동계 패럴림픽 음악을 총괄한 이지수 음악감독의 작품입니다. 3월 14일 세계 수학의 날을 맞이해, 올해 <수학동아>는 음악 크리에이터 ‘상상이상이상길(본명 이상길)’과 ‘썬더 드래건(본명 김민재)’의 수학 노래를 이용한 챌린지를 진행합니다.

왜 수학과 음악을 연결하려는 걸까요? 지금, 수학을 악보에 그리는 사람들을 만나봅니다.

이지수 감독

Q. 파이송 의뢰를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막막했어요. 보통 다 만들어진 영상을 보면서, 그곳에 들어갈 음악을 만들어 왔는데요. 이 작업은 반대로 제가 먼저 시나리오를 읽고 음악을 만든 뒤, 배우들이 촬영해야 했어요. 자유롭게 작곡할 수 있어서 좋기도 했지만, 음악이 그만큼 중요한 장면이라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원주율 소수점 아래 자릿수를 보니 너무 불규칙하더라고요. 난해한 현대 음악이 나올까 봐 걱정됐어요. 이번에 파이송을 만들면서 수학이라는 재료로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처음 알아 신기하기도 했답니다."

Q. 파이송을 만들 때 염두에 둔 점이 있나요.

‘고등학교 경비원으로 신분을 감추고 살아가는 탈북한 천재 수학자가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노래를 통해 수학의 아름다움을 증명한다.’

"시나리오의 해당 장면을 백 번 넘게 읽으면서 머릿속에 장면을 계속 떠올렸어요. 인물의 머릿속, 마음속 그리고 처한 상황에 완전히 이입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러다 보니 누구나 칠 수 있는 쉬운 곡이고 듣기 좋은 노래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아노를 치는 인물들이 영화에서 피아노 전공자도 아닌 데다 즉흥적으로 합주하는 장면이기 때문이에요. 갑자기 어려운 곡을 멋지게 쳐버리면 오히려 관객의 영화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Q. 파이송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어떻게 끌고 가고 싶었나요.

"영화의 주제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중요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어요. 한 명이 숫자를 선율로 제시하고 그에 맞춰서 다른 이가 화음을 만들어 넣는 노래예요. 단순한 선율이 기승전결이 있는 음악으로 완성돼 나가는데, 그 과정 자체가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만든 거지요. 그래서 곡의 초반부는 ‘과연 이렇게 해서 답이 나올까?’라며 의구심이 느껴지도록 하고, 후반부는 답을 찾아 확신을 주는 경쾌한 분위기로 작곡했습니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 주인공들이 파이송을 연주하는 모습. 쇼박스

 

Q. 원주율 소수점 아래 자릿수는 정해져 있는데요. 파이송을 만든 원리가 궁금합니다.

"1은 도, 2는 레, 3은 미은 시 그리고 8은 다시 다음 옥타브의 도로 정했어요. 그런데 소수점 아래 자릿수가 불규칙하게 나타나니까 그대로 음악을 만들면 지루한 곡이 될 것 같았어요. 음악에서는 반복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반복되는 멜로디가 있으면 그 음악이 어떤 음악인지 인지하기 쉽고 오히려 지루하지 않게 느껴져요. 그래서 초반 숫자 몇 개만을 이용해 주요 멜로디를 만들었어요. 이 멜로디를 어디서 몇 번 반복할 것인지, 몇 번째 자릿수까지 칠 건지 등을 고려해 파이송을 완성했습니다. 한 2일 만에 만든 것 같네요."

Q. 음악과 수학은 어떤 관계일까요.

"음, 오스트리아 작곡가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처럼 수학의 힘을 활용해 다양한 음악을 만들려는 시도가 꽤 있어요. 사실 음악과 수학은 관련이 깊은데요. 음악에서는 감성적인 면과 이성적인 면 모두가 중요합니다. 이성적인 면은 음악을 구조적으로 딱딱 맞아떨어지게 만듦으로써 음악을 아름답게 만드는 거예요. 이 원리에 수학이 많이 있답니다."

Q. 2002년 드라마 ‘겨울연가’ 배경음악으로 데뷔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작곡과 2학년에 재학 중일 때 했던 아르바이트가 시작이었어요.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피아노를 치는 배용준 배우의 대역을 하기로 했는데, 당시 연주할 곡이 시간에 맞춰 준비되지 않아서 제가 고등학생 때 만든 곡을 쳤습니다. 그 자리에서 장면의 분위기에 맞게 편곡해서 연주한 거예요. 그렇게 우연히 제 곡이 드라마에 삽입돼 이름이 알려지면서 배경음악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계속 들어왔어요.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건 영화 ‘올드보이’ 음악이었습니다. ‘이번 노래만 만들고 유학 가야지’ 했는데 어느새 20년이 훌쩍 넘게 이 일을 하고 있네요. 사람들과 의견을 주고받고 협업해서 하나의 음악을 완성해 나간다는 점이 너무 재밌어요. 물론 대중성과 음악성을 모두 잡아야 한다는 점이 여전히 쉽지 않아요."

Q. 작곡을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초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이 동요를 작곡했어요. 선생님이 작곡하는 모습을 자주 본 데다 쓰다 버린 악보를 주워서 따라 그리면서 작곡에 관심이 생겼어요. 10살인 어느 날 집에서 체코 음악가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신세계로부터’를 듣는데 너무 멋진 거예요. 악보사에서 이 악보를 찾아보다가 작곡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대하시는 부모님 앞에 신문에서 작곡을 가르친다는 신문광고를 가져가서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작곡을 시작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작곡가가 아닌 다른 꿈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Q.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제 앨범 ‘아리랑 콘체르탄테’에 수록된 곡들입니다. 아리랑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시킨 곡이에요. 제가 영화에 쓰이는 현대 음악을 많이 해온 데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그 어떤 외국 작곡가보다 우리나라 음악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시키는 일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우리나라 전통곡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열심히 할 생각이에요."

※이 감독은 2018년 평창 패럴림픽 개폐회식 음악감독을 맡기도 했습니다. 30곡 정도가 들어갔는데 영상, 음향, 시나리오, 연출 등 다양한 관계자와 여러 회의를 거치며 기획만 1년이 걸렸어요. 이 감독은 “내가 만든 공연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그 현장감과 감동은 잊지 못할 것 같다”라고 전했어요.

○ 수학을 좋아하고 싶어 수학 노래 만들었어요! 썬더 드래곤 & 상상이상이상길

 

썬더 드래곤 & 상상이상이상길

● 썬더 드래건

힙합 음악을 주로 다루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음악 크리에이터예요. 2023 세계 수학의 날 이벤트를 위해 노래 ‘경우의 수’를 만들었어요. 2022년 <수학동아> 파이송 챌린지에 참가해 우승하면서 수학을 이용해 노래를 만드는 데 관심을 갖게 됐어요.

수학을 주제로 곡을 쓰려고 하니 고등학교 3학년 확률과 통계 시간에 배운 ‘경우의 수’가 떠올랐어요. 경우의 수는 실생활에서 비유적으로 많이 쓰는 단어잖아요. 특히 이뤄질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많이 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려운 일도 어떻게든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노래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어요. 또 시행, 가설, 증명 같은 단어를 가사 곳곳에 집어넣어 수학적인 느낌을 물씬 살리려고 노력했답니다. 마지막으로 뉴진스 ‘디토’처럼 아련하고 감성적인 분위기가 흐르게 했는데, 어떤 부분인지 찾아봐 주세요!

● 상상이상 이상길

수학, 과학적인 요소를 활용한 노래나 다른 느낌의 여러 음악을 합쳐서 노래를 만드는 음악 크리에이터예요. 연세대학교 신소재공학과 학생이기도 해요.
‘수학아 사랑해’와 새로 작곡한 원주율 비트로 <수학동아>와 함께 2023 세계 수학의 날 이벤트를 합니다. 2022년 파이송 챌린지에 쓰인 노래 ‘파이송’을 만들기도 했어요.

중학교 2학년 수학 시간에 ‘이차방정식엔 근이 2개 있다’는 사실을 배울 때, 심장이 두근두근이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이런 언어유희를 이용해 수학에 대한 사랑을 노래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 ‘수학아 사랑해’를 작곡했어요. ‘내심’ 속으로만 말해, 네 생각으로 감‘싸인’ 채로 같은 가사를 썼지요. 수학을 더 좋아하고 싶어서 만든 노래이기도 한데요. 여러분도 제 노래를 들으며, 수학에 애정을 더 붙이고 값진 ‘수확’을 일궈내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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