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과학이야기 -

고열 견디는 합금, 에너지 위기 해결에 일조할까

by KOREAN BANK CLERK 2023. 3. 12.

 

 

 

‘만약 비행기가 없었다면?’ 현대사회에서 이런 상상은 재미보다는 아찔함을 안겨준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특권인데, 권리가 없어지는 것을 누가 좋아하랴. 하지만 지금처럼 에너지와 자원이 빠른 속도로 고갈된다면 아찔한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있다. 우리 다음 세대는 문명을 누릴 권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고용체(합금) 고체의 결정 속에 다른 원소의 원자가 섞여 들어가 균일하게 분포한다. 적당한 온도에서 가열하면 섞여있던 원자들이 모여 화합물을 이룬다. 과학동아

자원과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답은 에너지 효율(열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비행기를 예로 들어보자. 대륙을 넘어 이동하는 항공기는 제트엔진을 사용한다. 오늘날 항공기에 쓰이는 일반적인 제트엔진의 효율은 기름(보통 등유) 1L당 약 80m다. 2022년 한 해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국산차인 현대자동차 포터 2의 엔진 효율(1L당 약 9km)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게 느껴진다.

Al-Cu 합금(두랄루민), Ni-Al 합금(초내열 합금)

 

● 비행기 연비 높이려면 엔진 내열성 높여야

대체 이토록 연비가 낮은 비행기를 왜 타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디 비행기를 승용차처럼 혼자, 아니면 가족끼리만 오순도순 타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까. 승객 수로 나누면 항공기의 연비는 승용차보다는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항공기의 효율을 더 높일 방안을 찾고 있다.

현재까지 찾은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중량을 줄이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높은 온도에도 견디는 재료를 만드는 방법이다. 둘 다 금속 과학자들이 머리 싸매고 연구하는 분야지만 이번에는 두 번째 방법에 집중하고자 한다.

제트엔진은 압축된 공기에 연료를 분사해 연소 아니 거의 폭발을 시켜 추진력을 얻는다. 제트엔진 효율은 화염의 온도가 높을수록 높다. 따라서 제트엔진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높은 온도의 화염도 터빈이 견뎌내야 한다. 고온에 잘 견디는 금속으로 터빈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금속을 비롯한 고체는 일반적으로 온도가 높아지면 흐물흐물해진다. 온도는 물질이 가지는 에너지의 정도로 정의되는데, 온도가 증가하면 원자의 회전과 진동이 커지고, 그것이 원자간 결합이 감당할 수 있는 거리를 벗어나면 고체가 액체로 변한다. 특히 금속은 고온 환경에서 내부 원자가 잘 이동하기 때문에 약한 힘에도 변형이 잘 된다.

고온 환경에 놓인 금속의 강도는 그것을 이루는 원자 종류(원자 간 결합력)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한 예로 갈륨(Ga)은 용융점이 30℃에 불과해 쉽게 녹는다(종종 커피를 휘젓다가 사라져버리는 티스푼 마술에 사용된다). 반면 텅스텐(W)은 용융점이 3400℃나 돼 웬만한 고온 환경에서도 강도를 유지한다.

이쯤에서 제트엔진 터빈을 만들 재료로 텅스텐을 예상할지 모른다. 그러나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답이다. 텅스텐은 밀도가 19.25g/cm3로, 순금(밀도 19.34g/cm3)만큼 무겁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도둑이 벽돌만 한 금괴를 가방에 몇 개씩 집어넣고 도망가는 장면을 보면 재료공학자로서 마음이 불편하다. 벽돌 크기의 금괴는 실제 벽돌 10개의 무게와 맞먹는데, 그걸 한 손으로 가뿐히 가방에 넣고 뛰는 도둑들은 무슨 초능력자들이란 말인가.

다시 제트엔진 얘기로 돌아와서, 텅스텐은 무게 때문에 엔진의 효율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 게다가 너무 비싸서 텅스텐 터빈을 사용하는 항공사는 경쟁력이 없을 것이다. 각국 정부는 고온에서 내구성을 가진, 그러면서 동시에 무겁지 않은 금속을 오랫동안 개발해왔다. 높은 온도에서 잘 견딘다고 알려진 니켈(Ni)-크롬(Cr) 합금에 다양한 원소를 섞는 실험이 진행됐다. 그리고 마침내 영국의 헨리 위긴 앤 컴퍼니는 니켈 50%, 크롬 20%에 티타늄(Ti)과 알루미늄(Al)을 혼합해 초내열 합금 ‘니모닉(Nimonic)’을 개발해 냈다. 니모닉은 초창기 제트엔진에 쓰이며 초내열 합금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미국 전투기 ‘F-15 이글’에 들어가는 제트엔진. 엔진이 강한 추력을 내기 위해서는 고온에도 잘 견디는 초내열 금속으로 제작돼야 한다. Public domain

 

● 현미경으로 찾아낸 초내열 합금의 비밀

오늘날 주로 쓰이는 초내열 합금은 니켈에 알루미늄과 코발트를 섞은 합금이다. 이것이 고온에서 강도를 유지하는 비밀은 과학이 발전해 재료의 미세조직을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되면서 한 꺼풀 벗겨졌다.

앞서 온도가 높으면 금속의 강도가 저하된다고 설명했는데, 정확히는 ‘열역학적 상대온도(homologous temperature)’에 따라 그 정도가 결정된다. 열역학적 상대온도는 현재 온도를 용융점의 온도로 나눈 값이다. 상온에 있는 납(Pb)을 예로 들어보자. 납의 열역학적 상대온도는 상온(300K)을 납이 녹는 온도 600K(327℃)로 나눈 값인 0.5이다. 녹는 온도가 1811K(1538℃)인 철(Fe)은 약 905K(632.5℃) 환경에 뒀을 때 열역학적 상대온도가 0.5다. 이때의 철은 잘 변형된다. 상온의 납이 잘 구부러지는 이유는 가열한 철처럼 열역학적 상대온도가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인 니켈은 이런 규칙을 깬다. 니켈은 용융점이 1728K(1455℃)으로 철보다 낮지만 니켈을 기본으로 만든 합금은 높은 온도에서도 강도를 유지한다. 비밀은 아름다운 미세조직에 있다. 니켈-크롬-알루미늄-티타늄 합금을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내부에 새로운 상(phase・어떤 경계까지 물리적, 화학적 성질이 같은 물질)이 생성돼 있다. 이를 감마프라임(γ’)상이라고 부른다.

감마프라임상은 보통 Ni 원자 3개와 Al 원자 1개가 강하게 결합된 구조를 갖고 있다. 니켈 합금을 적당한 온도로 가열하면 내부에 녹아있던 알루미늄 원자 등이 규칙적으로 모여 이런 화합물을 형성한다. 감마프라임상 화합물은 신기하게도 합금의 고온 강도를 높이는 강화제 역할을 한다. Ni3 Al 화합물이 생성되는 니켈 합금은 1273K(1000℃)이나 되는 고온에서 그 강도가 순수한 철이나 니켈의 수십 배에 달한다.

감마프라임상이 어떤 마술을 펼치기에 합금의 초내열 특성이 강화되는지는 이론적으로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확인한 사실은 초내열 니켈 합금에 들어있는 Ni3Al 화합물 자체의 강도가 고온에서도 떨어지지 않고, 심지어는 온도가 높아지면 강도가 더 커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감마프라임상의 형태를 다양하게 만들고, 고온에서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새로운 합금 원소 후보를 찾고 있다. 또한 초합금을 단결정으로 제조하고 내부에 감마프라임상과 같은 미세구조를 만드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일반적인 금속은 결정과 결정 사이의 ‘결정립계면(grain boundary)’을 가지는데, 온도가 올라가면 이런 결정립계면에서 결정끼리 미끄러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초내열 합금을 단결정으로 만들면 보다 높은 온도에서 견딜 수 있다. 경이로운 미세구조를 품고 초내열 특성을 뽐내는 금속이 에너지 위기 시대의 해결사로 나서주길 기대해 본다.


※필자소개

한승전  한국재료연구원 책임연구원. 1990년 부산대 무기재료공학과, 1997년 KAIST 재료공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부터 한국재료연구원에 재직하며 2002년에는 일본 오이타대 비상근 강사, 2018년과 2022년에는 일본 도호쿠대 금속재료연구소 초빙교수로도 일했다. 2020년 정부출연연구소 우수성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 2021년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 2022년 대한금속학회 동국송원학술상을 수상했다. ‘모던 알키미스트’ 등의 책을 저술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