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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이야기 -

403초 중국에 뒤졌다고?...1억도 30초 돌린 ‘대한민국 핵융합’이 더 앞섰을수도

by KOREAN BANK CLERK 2023. 5. 11.

태양을 모방하는 핵융합 발전

프랑스 카다라쉬에 건설 중인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구조. 진공용기 안에서 1억도의 플라스마(분홍색)가 발생하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자석(가운데 흰 기둥)이 플라스마가 용기에 부딪히지 않도록 밀어낸다.

두 개의 원자핵이 합쳐지는 ‘핵융합’은 태양에서 일어나는 발열 반응이고 막대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많은 과학자들이 이를 지구에서 구현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같은 (+) 전하를 띄고 있는 원자핵이 부딪칠 수 있는 이유는 1500만도, 2000억 기압이라는 태양 중심부의 극한 환경 때문입니다. 지구에서는 2000억 기압을 만들 수 없는 만큼 온도를 1억 도 이상 올려 ‘플라스마’ 상태를 만든 뒤 핵융합 반응을 유도합니다. 1억 도의 온도를 견딜 수 있는 소재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만큼 커다란 자석을 이용해 도넛 모양의 ‘토카막 장치’에 플라스마를 띄웁니다. 그런데 플라스마가 야생마처럼 날뛰는 만큼 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실험로에 플라스마를 만들고 실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플라즈마를 1억 도로 유지하라

높은 온도의 플라즈마를플라스마를 오랜 기간유지하는 일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핵융합 발전이 상용화로 연결되려면 이 플라스마를 1년 365일 내내 유지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EAST나 KSTAR와 같은 실험로를 만든 뒤 플라스마를 오랜 시간 유지하기 위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EAST의 연구자들이 403초라는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 낸 뒤 환호했던 이유입니다. EAST는 지난 2017년 10초를 넘었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101초에서 400초를 넘기기까지 2년의 시간이 걸린 셈입니다.

반면 한국의 실험로인 KSTAR의 최고 기록은 지난 2021년 기록한 30초입니다. 10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 한국의 기술력이 중국보다 뒤쳐진 것일까요. 과학자들은 두 실험로의 단순 비교가 어렵다고 이야기합니다.

KSTAR 모습 [사진 제공 = 한국핵융합연구원]

토카막 내부의 온도를 올리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전자의 온도를 올리는 방법, 이온의 온도를 올리는 방법입니다. 이온이 전자보다 무겁고 제어가 어려운 만큼 이온의 온도를 높이는 기술이 더 어려운 기술로 분류됩니다.

두 핵융합 실험로의 온도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중국 EAST가 2017년 발표한 데이터를 분석한 과학자들은 EAST의 온도가 약 5000~6000만 도일 것이라는 값을 얻었습니다. 반면 한국의 KSTAR은 1억 도입니다. 1억 도는 핵융합을 일으킬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분류됩니다. 즉 한국은 핵융합 반응이 가능한 1억 도의 온도를 만든 뒤 30초를 유지했고, 중국은 이보다 낮은 온도에서 400초를 유지한 셈입니다.

한국과 중국 과학자들의 최종 목표는 핵융합 상용화입니다. 가는 길이 다를 뿐입니다. 중국은 낮은 온도에서 유지시간을 길게 잡고 온도를 조금씩 높여 나가는 반면, 한국은 1억도를 만들어 놓은 뒤 유지 시간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접근법이 다른 만큼 두 기술의 단순 비교도 어렵습니다. 진정한 핵융합이 되려면 전자의 가열, 이온의 가열 모두 필요합니다. 중국이 우리보다 오랜 기간 플라스마를 유지했다고 해서 자존심 상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의 기술이 더 뛰어나다며 중국의 403초 유지한 성과를 무시할 이유도 없습니다.

◆3만번의 실험으로 해낸 30초 유지

중요한 점은 과학자들의 노력입니다. 지난 2021년 KSTAR가 플라스마 30초 유지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를 위한 실험 횟수는 무려 3만 번이라고 합니다. 하루에 한 번씩 실험을 해도 무려 10년이 걸리는 횟수입니다. 이런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핵융합 상용화에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는 셈입니다. 중국 과학자들 역시 EAST의 유지에 엄청난 연구를 해왔을 것입니다.

이제 1편에서 전해드렸던 기사의 내용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기사 속에 어려운 용어로 표현되어 있는 것들이 이제는 이해가 되실 것으로 봅니다. 인간은 왜 핵융합을 모방하려는지, 이를 위해 어떤 방법을 쓰고 있는지 등의 내용 말입니다. 그리고 왜 과학자들이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기뻐하는지 역시 알 수 있습니다. 1초, 1초 늘려가는 일이 상당히 고된 작업인 만큼 이 같은 성과에 과학자들은 얼싸안고 기쁨을 나눕니다.

KSATR 진공용기 내부 모습 [사진 제공 = 한국핵융합연구원]

과학자들의 최종 목표는 단연 핵융합 상용화입니다. 이를 위한 KSTAR의 목표는 2026년 300초 유지입니다. 300초는 365일 플라즈마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2026년 300초에 달성하면 바로 핵융합 상용화로 연결될까요. 절대 아닙니다. 작은 핵융합로에서 실험한 결과가 곧바로 상용화로 연결되는 것은 쥐 실험에서 좋은 성과를 낸 신약 후보물질을 두고 “사람에게도 적용된다”라고 외치는 것과 같습니다. 기초 실험을 통해 얻은 결과를 공학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또 다른 얘기입니다.

핵융합 상용화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해 전 세계 핵융합 연구 강국이 손을 맞잡았습니다.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의 이야기입니다.

◆어려우니 손잡자… ITER 구축


핵융합 관련 기사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ITER입니다. ITER에 어떤 부품을 납품했다는 기사를 비롯해 공정률이 몇 %에 도달했다느니와 같은 기사를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International Thermonuclear Experimental Reactor’의 약자인 IETR는 말 그대로 전 세계 각국이 모여 거대한 핵융합 실험로를 만드는 것입니다. 프랑스 남부 소도시인 카다라쉬 지역에 건설되고 있는 IETR의 공정률은 현재 70%를 넘어섰습니다.

ITER에는 현재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인도, 유럽연합(EU)과 한국, 일본 등 7개 국가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7개 국가가 십시일반 돈을 모아 핵융합 실험로를 건설하면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돌입한 것입니다. ITER의 시작도 독특합니다. 냉전이 극에 달했던 1985년, 옛 소련의 공산당 서기인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제안하면서 시작이 됐습니다. 준비 과정은 오래 걸렸지만 2006년 11월, 7개국 대표가 모여 ITER 건설을 약속하기에 이릅니다.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건설 현장 모습 [사진 제공 = 한국핵융합연구원]

간혹 국내 대기업들이 ITER에 부품 수주를 했다는 기사를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ITER 운영은 각국이 연구개발(R&D) 비용을 나눠서 지불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 돈을 모아 ITER 건설에 필요한 부품을 사서 조립하는 구조입니다. 현대중공업과 같이 커다란 배를 만드는 기업들이 이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즉 배의 선체를 말끔하게 만드는 기술을 기반으로 ITER에 필요한 커다란 부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국내 기업들이 ITER 건설 과정에서 수주한 금액은 5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 정부가 ITER 건설에 내는 돈이 약 4000억 원대 후반인 만큼 우리가 돈을 내고, 그 돈을 우리 기업들이 다시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 같은 경험은 향후 핵융합 발전이 상용화되었을 때, 국내 기업들의 수주 릴레이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ITER는 2025년 첫 플라즈마 시험 발생에 돌입할 계획입니다. 이곳에서 얻은 지식은 7개 국가가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자국에 핵융합 상용화를 위한 준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넉넉히 잡아서 2030년이면 핵융합 상용화가 될까요. 현재 과학자들이 바라보는 핵융합 상용화 시기는 2050년입니다. 해결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거든요. ITER 역시 실험로일 뿐, 실제 핵융합을 구현하려면 이보다 더 큰 핵융합로가 필요합니다. ITER에서 얻은 결과와 KSTAR가 얻은 데이터 등을 토대로 프로토타입의 융합로를 먼저 건설하고, 이를 토대로 ‘진짜’ 핵융합로 설계를 해야 합니다. 아직 어느 누구도 해 본 적이 없는 기술인 만큼 오래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원자력발전이 그랬듯, 과학자들은 해내리라 생각합니다. 간혹 핵융합은 구현이 불가능하다, 혹은 ‘망상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하며 이를 ‘유사과학’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유사과학은 불가능한 일을 그럴 듯하게 과학으로 포장한 것을 뜻합니다. 물이 살아있다거나 어떤 물을 마시면 건강이 좋아진다거나, 한때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음이온 제품, 혈액형으로 성격을 구분하는 것 등이 유사과학에 해당합니다. 만약 어떤 과학자가 ‘상온 핵융합’을 구현하겠다고 주장한다면 지금의 기술로는 유사과학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의 목표는 높은 온도에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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