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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이야기 -

지하 500m 대형 구리원통에 방사성폐기물 가둔다

by KOREAN BANK CLERK 2023. 10. 15.

한국원자력연구원 지하처분연구시설 가보니
해외 선진국 대비 관련 기술 80% 수준까지 끌어올려
벤토나이트 국산화 성공, 구리 원통 두께 줄이는 기술도 개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의 안전성을 연구하기 위해 설치된 한국원자력연구원 지하처분연구시설 내부모습. 산속에 설치된 지하터널을 따라 걸어가면 끝에 연구시설이 있다. 실제 핵연료를 쓰진 않는다.

지난 15일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지하 120m에 설치된 지하처분연구시설( KURT )에 들어서자 서늘한 기운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1년 내내 18도 정도의 기온을 유지한다는 지하처분연구시설은 국내 유일의 사용후핵연료 처분 관련 연구시설이다.

지하처분연구시설은 말 그대로 ‘연구시설’로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을 만들기 전에 성능과 안정성을 현장에서 실증하는 곳이다. 

방사성폐기물을 처분할 기술이 예상대로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는지를 검증하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온 각종 방사성폐기물은 구리로 만든 원통에 담은 뒤 벤토나이트라는 점토성 물질을 부어 봉인한다. 

이렇게 봉인된 구리 원통을 지하 깊숙한 곳에 보관하는 것이 사용후핵연료 처분의 기본 원리다. 

이 연구시설에서는 구리가 10만년 후에 어느 정도 부식되는지, 벤토나이트는 물질 확산을 얼마만큼 막아주는지를 실험한다. 

사용후핵연료의 높은 온도를 그대로 모사하기 위해 히터를 사용하고, 방사성핵종의 이동을 표현하기 위해 안정동위원소와 염료 추적자도 쓴다.

지하처분연구시설 입구


지하처분연구시설이 들어선 인공 동굴은 총 550m 길이로 T자 형태로 돼 있다. 

동굴 곳곳에는 구멍도 뚫려 있었다. 

18도의 다소 서늘한 기온에도 연구원들은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정도로 연구에 열중이었다. 

한쪽에서는 기체 유동 실험이 한창이었다.

사용후핵연료 대체물질을 금속용기와 벤토나이트(점토)로 감싸 땅에 묻어놓았다. 뜨거운 사용후핵연료와 조건을 맞추려고 히터로 열을 가하면서 안전성을 조사한다.


사용후핵연료가 지하 깊은 곳에 오랜 시간 묻혀있으면 처분 용기가 부식되고, 미생물의 신진대사가 이루어져 수소와 이산화탄소 같은 기체가 발생한다. 

이런 기체는 기존 예측에 불확실성을 제공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반응성 가스인 수소와 이산화탄소, 비반응성 가스인 질소와 헬륨을 이용해 기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실험을 통해 미리 확인하는 것이다.

 

지난 15일 대전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연구원 내에 있는 지하처분연구시설( KURT ). 실증을 위해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사진은 다양한 재료와 다양한 제작 방식이 적용된 처분 용기.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이날 이곳에서는 처분 용기가 얼마나 부식되는지에 대한 실험도 진행되고 있었다. 

처분 환경과 유사한 조건에서 장기간에 걸친 처분 용기의 부식 특성을 규명하기 위해 연구원들은 다양한 재료와 다양한 제작 방식이 적용된 처분용기 시편 300개를 각각 실험하고 있었다. 

지하처분연구시설에서 실험에 쓰는 처분 용기는 실제 500m 깊이에 들어갈 처분 용기의 절반 정도 크기였다.

이들이 서늘한 지하에서 연구를 하는 이유는 사용후핵연료를 연구 처분하려면 지하 500m 깊이에 묻어야 하기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는 핵종의 반감기에 따라 높은 열과 방사선을 수만년 이상 방출하는데, 독성이 사라지는 데만 10만년이 걸린다. 

국제원자력기구( IAEA )가 권고하는 가장 안전한 사용후핵연료 처분 방법은 스테인레스 용기 안에 사용후핵연료를 넣은 다음 구리로 봉인해 지하 500m 아래에 점토층과 같이 묻는 것이다. 

이는 스웨덴에서 처음 개발했다.

 

지난 15일 대전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연구원 내에 있는 지하처분연구시설( KURT ). 실증을 위해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대전=김효선 기자
조동건 한국원자력연구원 사용후핵연료 저장처분 기술개발단장은 “국내에서도 사용후핵연료 처분을 위한 기술 개발은 상당 부분 끝났다”고 설명했다. 

조 단장은 “핀란드, 스웨덴 같은 사용후핵연료 선도국 대비 국내 기술은 80% 왔다고 본다”면서 “예비타당성 사업으로 돈이 풀리면서 좋은 인력을 채용하고, 여러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기술 수준이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제 회의를 가면 한국의 기술이 발전되는 것에 다들 놀란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2021년 다부처 예비타당성 사업으로 시작된 ‘사용후핵연료 저장·처분 안전성 확보를 위한 핵심기술개발 사업’에는 오는 2029년까지 9년 동안 총 4300억원 규모 연구개발( R&D )비가 투입될 예정이다.

원자력연구원은 최근 사용후핵연료 영구 처분에 필수적인 벤토나이트를 외국산과 동등한 품질까지 높일 수 있는 생산 공정 개발에 성공하기도 했다. 

벤토나이트는 점토의 일종으로 사용후핵연료를 담은 구리 용기에서 방사성 물질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완충재 역할을 한다. 

지금까지는 벤토나이트를 수입했었는데,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약 6000억원의 비용을 줄일 전망이다.

원자력연구원은 지하처분연구시설 외부에 있는 실내 연구소에서 구리 용기를 얇게 만들기 위한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현재 사용후핵연료를 담은 구리 원통은 5㎝의 두께로 만들어지는데 실험 결과 100만년이 지나도 구리 부식은 0.5㎜밖에 안 되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조 단장은 “구리 비용을 아끼기 위해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구리 원통을 1㎝ 두께로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발 앞서서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 마련에 나선 국가들에 비하면 아직 가야 할 길은 많이 남았다. 

스웨덴과 스위스, 프랑스, 일본은 실제 처분장과 비슷한 450~500m 깊이의 동굴에 지하연구시설을 만들었다. 

이들에 비하면 한국의 연구시설은 규모가 작다. 

한국도 처분장과 비슷한 규모의 연구시설을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영구 처분시설 완공을 앞둔 나라도 있다. 핀란드는 지하 450m 암반에 심지층 처분장을 건설해 2025년부터 운영할 예정이다. 

스웨덴은 2022년 건설허가를 받아 2030년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 시설인 원전 내 수조가 2030년이면 포화 상태에 이른다.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2030년까지는 500m 깊이의 지하 연구시설을 추가로 짓고 기술 수준을 더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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