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과학이야기 -

달나라용 의류관리기 성큼…골칫거리 월면 먼지 싹 없앤다

by KOREAN BANK CLERK 2023. 3. 6.

아폴로 17호 우주비행사 해리슨 슈미트가 갈퀴를 들고 월면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다리에 잔뜩 붙어 있는 달 먼지는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고, 장비를 고장낼 수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 NASA ) 제공 1972년 12월 11일 달에 내린 아폴로 17호의 우주비행사인 해리슨 슈미트는 착륙선 밖으로 나간 뒤 생소한 작업 하나를 했다. 

월면에 서서 자신의 허리까지 올라오는 기다란 ‘갈퀴’를 집어 연신 달 표면을 긁었다. 

갈퀴는 땅에 떨어진 곡식이나 풀을 긁어모을 때 쓰는 기구다. 슈미트가 모은 건 달의 흙과 돌이었다.

그런데 이 작업을 촬영한 사진을 보면 눈에 띄는 모습이 있다. 

지저분한 우주복이다. 

다리에 검은색 가루가 잔뜩 묻어 있다. 가루의 정체는 달 표면을 덮은 먼지다.

달 먼지는 정전기를 띤다. 우주복에 붙으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인간의 호흡기에는 병을, 기계에는 고장을 유발한다. 

인간의 본격적인 달 진출을 앞두고 과학계가 달 먼지로 인한 문제를 해결할 기술을 최근 만들었다. 

뿌리는 모기약처럼 ‘액체질소’를 쏴 우주복에 달라붙은 달 먼지를 말끔하게 털어내는 방법이다. 

달나라에서 쓸 의류관리기 기술을 만든 셈이다.


■호흡기 해치고 장비 고장


미국 워싱턴주립대 연구진은 최근 액체질소를 스프레이 형태로 뿌려 우주복에 달라붙은 달 먼지를 손쉽게 털어낼 방법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인 ‘악타 아스트로노티카’ 최신호에 실렸다.

달 먼지는 태양풍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강한 정전기를 띤다. 

연구진은 “접촉하는 모든 것에 달라붙는 성질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우주비행사들은 달 먼지가 우주복에 붙자 페인트를 칠할 때 쓰는 솔처럼 생긴 먼지떨이로 우주복을 쓸어냈다.

효과는 시원치 않았다. 

아무리 쓸어내도 달 먼지는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우주복이 손상되는 일까지 생겼다.

털어낸 뒤에도 문제였다. 달 먼지의 입자 크기는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작다. 

형태도 송곳처럼 날카롭고 뾰족하다. 

이 때문에 월면에서 갈퀴를 들었던 우주비행사 슈미트는 달 먼지를 들이마신 뒤 목이 간지럽고 재채기가 나는 호흡기 질환을 겪었다. 

달에 단 며칠 머물렀는데 생긴 일이었다. 

달 먼지가 우주선의 전자장치에 들어가 고장을 일으킬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사고와 연결될 수 있다.

아폴로 17호가 임무를 마친 뒤 달에는 50여년 동안 사람이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은 굳이 달 먼지에 대처할 기술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이 주도해 한국과 영국, 일본 등 21개국이 참여하는 다국적 달 개척 프로젝트 ‘아르테미스 계획’ 때문이다. 

2025년에 달에 사람을 다시 착륙시키고, 2020년대 후반에 상주기지를 지을 예정이다. 

달이 사람으로 북적이는 시대가 곧 온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달 먼지는 다시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연구진이 이에 대처할 답을 내놓은 것이다.

화산재 등으로 제조한 모의 달 먼지가 액체질소와 접촉하자 크게 요동치고 있다. 미국 워싱턴주립대 연구진은 최근 액체질소를 우주복에 뿌리면 달 먼지가 떨어져 나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워싱턴주립대 제공

 

■달 먼지 세척력 무려 98%


연구진은 실험을 통해 우주복과 같은 재질의 옷에 지구의 화산재 등으로 만든 모의 달 먼지를 잔뜩 뿌렸다. 

그 뒤 끓는점이 영하 196도에 이르는 극저온 액체질소를 10초간 모기약처럼 스프레이 형태로 분사했다. 

그랬더니 우주복에 달라붙은 달 먼지 가운데 98%가 떨어져 나갔다. 

확실한 세척력을 보인 셈이다.

연구진은 ‘라이덴프로스트 효과’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했다. 

라이덴프로스트 효과는 차가운 액체가 아주 뜨거운 물체와 접촉하면 액체 일부가 기체로 바뀌는 현상에서 시작한다. 

기체는 뜨거운 물체의 표면을 코팅하듯 덮는데, 이때 남은 액체를 머리에 이는 것처럼 들어 올려 뜨거운 표면과 분리한다. 

달군 프라이팬 위에 떨어진 물방울이 한동안 살아남아 돌아다니는 것이 라이덴프로스트 효과 때문이다. 

물방울과 뜨거운 프라이팬 사이에 수증기가 끼어든 것이다.

이에 따르면 극저온 액체질소는 물방울, 비교적 따뜻한 상온에 걸린 우주복은 프라이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우주복에 접촉한 액체질소는 기체로 바뀌면서 우주복 표면을 코팅하듯 훑는데, 이때 달 먼지가 프라이팬 위의 물방울처럼 우주복 표면에서 살짝 떠오르며 분리된다.

연구진은 워싱턴주립대 공식 자료를 통해 “달 먼지를 털어내려고 빗질을 한번만 해도 우주복은 상한다”며 “액체질소로 75번 세척해도 우주복에 문제가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달 개척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번 기술이 월면에서 인간의 건강과 장비의 내구성을 보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댓글